과로로 안면마비가 왔습니다. 치료에 1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건강보다 앞에 둘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월 19일, 블랙야크 클럽 데이 2026에서 생애 첫 트레일런 21K를 걸어서 완주했습니다.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 산에서 다섯 시간 동안 무엇을 했고,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적어보았습니다.
올해 1월, 제주에서 100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산을 다니기 시작하고 몇 달 뒤, 제주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으로 올레길을 걸었습니다. 1월 2일에 100킬로미터를 채웠습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제주올레 100km 완주 증서」를 받았습니다. 증서 번호를 보면 2026년에 두 번째로 발급된 번호입니다.

올레길을 걸으며 제 몸에 대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오래 걷는 동안 발이 어디서부터 아파오는지, 다리가 언제쯤 무거워지는지, 그만두고 싶어지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그때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래서 21킬로미터라는 거리 자체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단거리는 됐고, 장거리는 안 됐습니다
중학생 때 저는 단거리 육상을 했습니다. 100미터를 11초대에 달렸습니다. 달리기를 못한다고 쓰는 사람의 기록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일 것 같아 먼저 적어 둡니다.
그렇다고 특출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저보다 빠른 형이 있었고, 군 단위로 놓고 보면 세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짧은 거리를 한 번 달리는 일에 한해서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습니다. 따로 훈련은 안 했지만 평소에 산과 들에서 뛰놀던 습관이 달리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장거리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어릴 때 조금 시도해본 것이 전부고, 커서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도 축구처럼 계속 뛰어야 하는 일을 하면 다리가 금방 지쳤습니다. 정강이 옆의 근육이 뭉치거나 발바닥 아치의 근육이 단단해져서 더는 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오래 달리는 방법을 아예 몰랐던 것 같습니다. 단거리를 달리듯이 장거리를 달렸으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달리기 하는 사람들의 유튜브를 아주 많이 봤습니다. 이제 달리는 방법 자체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달리기를 못한다고 할 때의 뜻은 느리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방법을 알았다고 몸이 바로 따라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저도 그만큼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왜 트레일런이었나
8월에 BAC 앱을 처음 알았습니다. 산에 오르면 인증을 남기는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 앱입니다. 첫 인증이 8월 2일이고, 그 뒤로 일주일쯤 산을 다녔습니다.
산행이 끝나고도 앱을 계속 들여다봤습니다.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이 그때입니다. 8월 15일 전후였습니다. 그전까지는 트레일런이라는 것을 해볼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달리기를 못하는 제가 21K 트레일에 신청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회 GPX 파일을 열어 코스를 먼저 봤는데, 대부분이 산길이었습니다. 도로나 임도를 달리는 구간이 길었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고, 신청했더라도 완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산길은 어차피 뛰기 어려운 구간이 많습니다. 경사가 서면 대부분 걷게 되고, 바위와 계단이 나오면 잘 뛰는 사람과의 속도 차이도 줄어듭니다. 제가 그동안 해온 등산과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며칠은 고민했습니다. 그 끝에 트레일러닝 베스트를 하나 샀습니다.
준비랄 것이 없었습니다
대회를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은 없습니다. 앞에 적은 8월 초의 산행은 대회를 알기도 전의 일입니다. 등산은 평소에 시간이 나면 하는 것이고, 그때 마침 시간이 났을 뿐입니다.
대회를 알게 된 것이 8월 중순이니 준비라고 부를 수 있는 기간은 9월 들어 보름 남짓이 전부였습니다. 그동안 한 일도 평지에서 뛴 것뿐입니다. 훈련이라기보다는 내 몸을 알아가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몸을 알아가는 데 쓴 도구는 손목시계 하나였습니다. 8월 31일에 어메이즈핏 T-Rex 3 Pro가 도착했고, 9월부터 차고 다녔습니다. 기록이 남기 시작한 것은 9월 2일, 대회까지 17일 남은 시점입니다.
그 전까지 제 운동에는 숫자가 없었습니다. 힘들다와 괜찮다,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시계를 차고 처음 산에 올라간 9월 2일 기록은 10.4킬로미터에 누적 상승 850미터, 3시간 7분, 평균 심박 146에 최고 174였습니다. 이 한 번의 기록으로 제가 어느 구간에서 어떤 심박을 쓰는지 대강 감이 잡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걷기만 해도 심박이 130에서 140까지 올라갑니다. 산을 오를 때는 160을 넘기는 것이 기본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볍게 걷는 속도가 저에게는 이미 유산소 운동입니다. 이걸 대회 전에 안 것이 그나마 준비였습니다.
평발, 그리고 수십 년의 신발
저는 평발입니다. 그래서 수십 년간 안전화와 등산화만 신고 살았습니다. 일반적인 운동화는 아주 짧게 걷거나 운전할 때 정도만 신었습니다. 발을 감싸고 받쳐주는 신발에만 익숙해진 발입니다. 달리기에 맞게 단련된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발로 21킬로미터를 뛰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트레일러닝화를 아예 안 사본 것은 아닙니다. 대회 열흘 전에 브룩스 캐스캐디아 19를 샀습니다. 받아서 신고 걸어봤는데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밑창이 세로로 쉽게 굽혀지는 신발이라 한 걸음마다 발바닥이 접혔고, 족저근막에 오는 자극이 금방 심해졌습니다. 결국 대회 당일에는 신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익숙한 쪽을 골랐습니다. 신고 나간 신발은 트레일러닝화가 아니라 경등산화, 네파 트램프입니다. 미드컷이라 발목을 잡아주고 앞쪽 토캡이 바위에 차이는 발가락을 막아줍니다. 밑창이 단단해서 돌길에서 발바닥이 받는 충격도 덜합니다. 평발에는 이 지지력이 가볍고 말랑한 신발보다 낫다고 봤습니다.
대신 무겁습니다. 제품 사양에 적힌 무게는 한 짝에 468그램입니다. 트레일러닝화가 보통 250에서 300그램 사이인 것을 생각하면, 양발로 300그램 넘게 더 지고 다닌 셈입니다. 한 걸음에 300그램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다섯 시간 동안 수만 걸음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어텍스 미드컷이라 통기가 덜해 발에 열이 쌓이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번 코스에서는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가지고 간 것들
신발 이야기를 했으니 나머지도 적어 둡니다. 대부분 대회를 앞두고 한두 주 사이에 갖춘 것들입니다.
- 모자 - 룰루레몬 패스트 앤 프리 러닝 햇 WovenAir
- 상의 - 아디다스 techfit 컴프레션, 7년 전에 사둔 것
- 시계 - 어메이즈핏 T-Rex 3 Pro. 8월 31일에 받아 9월부터 사용
- 신발 - 네파 트램프 경등산화, 한 짝 468그램
- 하의 - 데카트론 킵런 런 울트라 900, 9인치 투인원 쇼츠
- 벨트 - 데카트론 킵런 900 경량 트레일러닝 벨트
- 조끼 - 블랙야크 트레일러닝 베스트 대쉬12. 필수장비는 여기에 넣었습니다
- 스틱 - 네이처하이크,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만원
날짜를 보면 준비가 얼마나 급했는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벨트는 대회 여드레 전에 주문해서 나흘 전에 받았고, 쇼츠는 나흘 전에 주문해서 이틀 전에 받았습니다. 투인원 쇼츠는 시험 삼아 한 번 입어본 것이 전부고, 21킬로미터를 제대로 입어본 것은 대회 당일이 처음입니다.
목록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은 상의입니다. 아디다스 techfit 컴프레션인데 산 지 7년쯤 됐습니다. 처음 사서 한 번 입어보고는 너무 조여서 그대로 넣어뒀던 옷입니다. 이번에 꺼내보니 원단은 멀쩡했고 딱히 다른 대안도 없어서 그냥 입었습니다. 7년 만에 첫 실전이었던 셈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대회장에서 싱글렛을 나눠줬습니다. 알았으면 그것을 입고 출발했을 텐데, 첫 대회라 기념품을 언제 주는지도 몰랐습니다.
모자만은 예외입니다. 룰루레몬 러닝 햇은 운동하려고 산 물건이 아니라 평소에 그냥 쓰고 다니던 모자입니다. 워낙 편해서 같은 것이 두 개 있습니다.
귀에는 아무것도 꽂지 않았습니다. 오픈형 이어폰이 있긴 한데 산에서는 쓰지 않습니다. 뒤에서 오는 사람의 발소리, 비켜달라는 말, 내려오는 사람의 기척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 시간 동안 들린 것은 숨소리와 발소리뿐이었습니다.
장비를 새로 사서 바로 실전에 쓰는 것은 권할 일이 아닙니다. 쓸려서 문제가 생기면 다섯 시간 내내 같이 가야 하니까요. 다행히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운이 좋았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과 물, 그리고 쓸데없는 무게
행동식도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에너지젤을 쿠팡에서 주문해 여덟 개를 챙겼고, 연양갱도 네 개 넣었습니다.
절반도 쓰지 않았습니다. 체크포인트마다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충분히 많았습니다. 젤은 네 개면 됐고, 연양갱은 하나도 안 가져갔어도 됐을 것입니다.
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회 앱의 규정에 물통을 가득 채우라고 되어 있어서 양쪽 소프트플라스크를 끝까지 채웠습니다. 그런데 CP1에 도착할 때까지 마신 것이 두 모금이었습니다. 보충할 것도 없었습니다.
CP1에서는 나눠주는 이온음료 500밀리리터를 통째로 다 마시고, 간식거리를 종류별로 하나씩 집어 먹고 출발했습니다.
포카리스웨트 가루도 두 개, 2리터 분량을 챙겼는데 이것 역시 끝까지 꺼내지 않았습니다. 체크포인트에서 이온음료를 나눠주니 필요하면 플라스크에 그대로 담으면 됩니다. 가루를 타려고 물을 따로 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습니다.
CP2에서는 그렇게 했습니다. 플라스크 하나에는 이온음료를, 다른 하나에는 물을 담고 나왔습니다.
결국 등에 지고 다닌 물과 젤, 가루의 상당 부분은 끝까지 쓰지 않은 무게였습니다.
신발 300그램을 따지면서 등에는 안 쓸 것을 한참 지고 다녔으니 앞뒤가 맞지 않았던 셈입니다. 다음에는 젤 네 개에 물도 절반만 채우고 출발할 생각입니다. 이것도 한 번 해봐야 아는 일이었습니다.
전략은 하나였습니다
달리지 못하니까, 끝까지 걷는다. 대신 쉬지 않는다.
이것이 유일한 계획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지켜졌습니다. 기록을 보면 총 경과 시간 5시간 14분 10초, 실제 이동 시간 5시간 14분 08초입니다. 둘의 차이는 2초입니다.
대회 당일 아침
아침 6시쯤 가평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유부우동과 참치마요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다섯 시간을 걸을 사람의 식사치고는 소박했지만, 속이 부담스러우면 오르막에서 더 힘들 것 같았습니다.

7시에 대회장에 도착했습니다. 출발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어서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돌아다니다가 부상 예방 테이핑을 해주는 부스를 발견했습니다. 오픈 전이었지만 부지런한 몇 명이 줄을 서 있길래 따라 섰습니다. 오래 걸을 것을 생각하면 평소에 약한 왼쪽 무릎이 가장 걱정이었고, 거기에 테이핑을 받았습니다. 받고 나오니 대기줄이 굉장히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출발 아치 앞에 섰습니다.

한 시간 반쯤 뒤, 같은 자리가 사람으로 찼습니다. 08시 57분, 출발 2분 전입니다. 앞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조끼를 메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실전이었습니다.

앞질러 간 사람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평지와 완만한 내리막에서는 다들 뛰었습니다. 그런 구간마다 사람들이 저를 앞질러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걷다 보면 그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앞서 달려간 사람들이 경사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걷기 시작하고, 그중 일부는 숨을 고르려고 길가에 멈춰 섭니다. 그들이 쉬는 동안 저는 계속 걸었습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앞질러 가는 사람을 보고 조급해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오르막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까요.
기록으로 본 다섯 시간
시계가 남긴 숫자는 이렇습니다.
- 거리 20.01km · 누적 상승 약 1,614m
- 이동 시간 5시간 14분 08초
- 평균 심박 155bpm · 최고 심박 181bpm
- 소모 열량 3,918kcal
- 최저 고도 65m · 최고 고도 529m

20킬로미터에 누적 상승 1,600미터가 넘습니다. 평지 20킬로미터와는 다른 종목이라고 봐야 합니다.
심박은 올라간 것이 아니라 내려갔습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심박의 흐름입니다. 보통 오래 달리면 지치면서 심박이 점점 올라간다고들 합니다. 저는 반대였습니다.
- 전반부 평균 163bpm
- 중반부 평균 157bpm
- 후반부 평균 151bpm
초반에 심박이 높았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출발하자마자 오르막이었고, 긴장했고, 무엇보다 내 페이스를 모른 채 남들 속도에 섞여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2킬로미터 구간에서 이미 평균 162, 최고 180이 찍혔습니다. 5킬로미터 구간은 평균 171로 이날 가장 높았습니다.
중반부터는 오르막이 가팔라지면서 속도 자체가 떨어졌고, 심박도 따라 내려왔습니다. 심박을 올릴 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는 경사였습니다.
후반부가 가장 낮은 것은 지쳐서가 아닙니다. 마지막 내리막의 급경사에서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내려가는 바람에 병목이 생겼고, 저는 줄을 선 채로 내려왔습니다. 몸은 더 쓸 수 있는데 앞이 막혀 있었습니다.
구간별로 나눈 심박
- Z4 역치(162~176bpm) - 약 2시간 12분, 전체의 42%
- Z3 템포(148~161bpm) - 약 1시간 47분, 34%
- Z2 유산소(119~147bpm) - 약 1시간 10분, 22%
다섯 시간 중 두 시간 넘게 역치 구간에 있었습니다. 걷기만 해도 130~140이 나오는 몸이라 그렇습니다.
13.5킬로미터 지점, 진짜 코스가 시작됐습니다
출발 후 2시간 53분쯤, 고도 65미터인 최저점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529미터까지 올라갔습니다. 464미터를 한 번에 올린 것입니다.

정상에서는 다들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줄을 서서 차례대로 한 사람씩 찍고 내려갔습니다. 이 사진도 그 줄에서 제 차례가 왔을 때 찍은 것입니다.
그중 한 구간의 기록이 이렇습니다.
- 15번째 1킬로미터 - 32분 26초, 상승 253m, 평균 경사 24.9%
- 16번째 1킬로미터 - 31분 02초, 상승 173m
1킬로미터를 가는 데 32분이 걸렸습니다. 이 구간의 평균 심박은 156으로 오히려 초반보다 낮습니다. 이때는 속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내리막, 그리고 병목
정상을 지나고 나서는 계속 내리막이었습니다. 내리막에서는 확실히 빨라집니다. 10번째 1킬로미터는 8분 22초(경사 -12.7%)로 이날 가장 빨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킬로미터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 19번째 1킬로미터 - 14분 23초 (경사 -16.0%)
- 20번째 1킬로미터 - 18분 45초 (경사 -16.7%)
비슷한 경사의 내리막인데 두 배 가까이 걸렸습니다. 좁은 길에 사람이 몰리면서 줄을 서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구간의 평균 심박은 136까지 떨어졌습니다.
만약 앞쪽 내리막에서 나온 속도를 마지막 2킬로미터에서도 낼 수 있었다면 33분 대신 17분 안팎이었을 것이고, 계산해보면 5시간 이내 완주가 가능했습니다. 아쉽지만 첫 대회에서 그런 변수까지 계산에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공식 결과
대회가 끝나고 나온 공식 결과입니다.

- 기록 5시간 15분 37초
- 전체 272위 / 811명
- 남자 233위 / 692명
- 35~39세 남자 31위 / 66명
공식 기록은 시계가 잰 5시간 14분 10초와 1분 반쯤 차이가 납니다. 출발선을 지나는 시점의 차이입니다. 이 글의 숫자는 전부 시계 기준입니다.
1위 기록은 2시간 43분 29초입니다. 저와는 2시간 32분 차이가 납니다.
걸어서 간 사람이 811명 중 272등이면 제 예상보다 앞쪽입니다. 순위를 보고 나간 대회가 아니라 의미를 크게 둘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끝까지 쉬지 않고 걷는 방식이 결국은 생각만큼 느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을 위해 보강할 것
완주(*걸었으니까 완보인가?)하고 나서 정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신발 문제는 답을 찾았습니다
평발이라고 하면 보통 아치를 받쳐주는 깔창을 권합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수십 가지를 써봤습니다. 결과는 한 번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치 모양으로 볼록 솟은 깔창은 그 볼록한 부분이 족저근막을 계속 누릅니다. 받쳐준다기보다 자극을 줍니다. 걷는 내내 한 지점이 눌리니 피로만 쌓이고, 오래 걸을수록 더 불편해집니다. 종류를 바꿔가며 써봤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방향은 같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안전화와 등산화, 전술화를 수십 년 동안 편하게 신어온 이유를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발들은 밑창이 단단해서 세로로 굽혀지지 않습니다. 발을 디딜 때 신발이 접히지 않으니 족저근막이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제 발에 맞았던 것은 아치 지지가 아니라 굽혀지지 않는 바닥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평범한 운동화든 트레일러닝화든 러닝화든, 단단한 카본 깔창을 넣어 신발이 세로로 접히지 않게 만들면 됩니다. 실제로 해보니 족저근막에 자극이 없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었고, 뛰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알게 된 시점이 대회를 코앞에 둔 때였다는 것입니다. 검증하지 않은 조합으로 21킬로미터를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적용하지 않았고, 익숙한 경등산화로 나갔습니다. 468그램을 지고 다닌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제는 대응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가벼운 신발에 카본 깔창을 넣는 쪽으로 갈 생각이고, 신발 때문에 발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평발과 함께 따라오는 약한 발목의 한계는 검증이 남았습니다.
2. 낮은 심박으로 오래 가는 능력
걷기만 해도 130~140이 나온다는 것은 같은 속도를 내는 데 남보다 많은 힘을 쓴다는 뜻입니다. 낮은 강도로 길게 걷고 뛰는 시간을 늘려서, 같은 속도에서 심박이 덜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기록을 단축하는 일보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이를 이룰 수 있으면 기록도 저절로 단축이 될 것입니다.
3. 오르막에 쓰는 근력
1킬로미터에 32분이 걸린 구간에서 저를 느리게 한 것은 숨이 아니라 다리였습니다. 계단, 경사, 하체 근력 운동이 필요합니다.
4. 내리막 기술
이번에는 내리막에서 오히려 시간을 벌었지만, 그것은 조심스럽게 내려간 결과이기도 합니다. 평발에 트레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내리막은 부상 위험이 가장 큰 구간입니다. 신발 쪽은 답을 찾았으니 남은 것은 내려가는 기술입니다.
5. 짧게라도 뛰는 연습
끝까지 걷는 전략은 첫 대회에서는 옳았습니다. 다만 평지와 완만한 구간에서 짧게라도 뛸 수 있게 되면 전체 시간은 크게 줄어듭니다. 이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마치며
작년 가을에 건강 때문에 산을 다니기 시작해서 올해 9월에 21K 트레일을 걸어서 완주했습니다. 기록은 5시간 14분이고, 멈춰 선 시간은 2초였습니다.

첫 대회에서 알고 싶었던 것은 제 몸이 어디까지 가는지였습니다. 다음에는 몇 가지를 보완하고 대회에 나가보려고 합니다. 특히 러닝은 완전 초보 수준이라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