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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홍서원(發四弘誓願)
네 가지 큰 서원을 세웁니다

 

『천수경』을 마무리하는 사홍서원과 귀명례삼보는 한국 불교의 모든 법회에서 염송됩니다. 법회를 시작할 때 삼귀의를, 마칠 때 사홍서원을 참석자들이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외우며 다짐합니다. 대승불교의 시작과 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핵심 가르침입니다. 두 가지 모두 속뜻은 앞의 여래십대발원문과 통합니다.

서원(誓願)은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고 일으키는 원입니다. 중생이 자기 이익을 위해 바라는 자리(自利)의 원과 대비됩니다. 아미타불이 법장비구 시절 세운 48가지 서원, 약사여래가 중생을 구하려고 세운 12가지 서원이 그 예입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끝없어도 모두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가 다함없어도 모두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이 한량없어도 모두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위없는 불도를 이루오리다

 

이 네 가지가 중생을 위해 부처님께 세우는 큰 서원입니다. 이어지는 네 구절은 구제해야 할 중생 속에 '나'를 넣어 다시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자성중생 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내 마음의 중생을 건지오리다
자성번뇌 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내 마음의 번뇌를 끊으오리다
자성 법문 서원학(自性法門誓願學) 내 마음의 법문을 배우오리다
자성불도 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 내 마음의 불도를 이루오리다
발원이 귀명례삼보(發願已 歸命禮三寶) 발원을 마치고 삼보께 귀의합니다
나무 상주 시방불(南無 常住 十方佛) 시방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시방불(十方佛)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말입니다. 十方은 '시방'으로 읽어야 맞습니다.

삼보는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 으뜸인 불(佛)은 부처님입니다. 역사 속에 실재한 고따마 싯다르타가 출가해 궁극의 깨달음을 이루었고,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불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좁게는 석가모니불을 뜻하지만, 넓게는 법신불과 화신불을 비롯한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불의 개념에 들어갑니다.

나무 상주 시방법(南無 常住 十方法) 시방에 항상 계신 법에 귀의합니다

 

법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해 설하신 모든 가르침입니다. 공간의 제한이 없기에 시방법이라 합니다. 법을 듣고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익힐 수 있는 것이 법이라고 풀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무렵 제자들이 이제 무엇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하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 곧 법에 의지하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법보다 스님을 믿는 것을 앞세우는 사람은 부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불교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 상주 시방승(南無 常住 十方僧) 시방에 항상 계신 승가에 귀의합니다

 

승(僧)은 잘못 풀면 오해를 부르기 쉬운 말입니다. 법회에서 우리말로 외울 때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하지만, 승은 개개인의 스님이 아니라 스님들의 모임인 승가 자체에 귀의한다는 뜻이 먼저입니다.

승가는 산스크리트어 상가(saṅgha)에서 온 말로, 불법을 중심으로 화합한 무리, 곧 화합중(和合衆)을 가리킵니다. 율장에서 승가는 주로 비구와 비구니, 곧 출가자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四部大衆), 곧 남녀 출가자와 남녀 재가 신도를 모두 아울러 승가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견해를 따르면 불교 신도도 모두 당당히 승에 속합니다.

그러니 삼귀의의 이 대목을 외울 때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중생이 곧 부처이고 누구의 마음에나 부처의 씨앗인 불성이 있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 왔으니, 내 마음속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확신으로 삼귀의를 한다면 『천수경』을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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