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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제어하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숫타니파타』의 첫 품인 사품(蛇品)은 그 첫 경인 「뱀의 경」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 경의 게송은 모두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사람들은 대개 뱀을 싫어합니다. 기독교에서 뱀은 에덴동산에서 첫 여자 이브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안긴 가장 사악한 동물로 그려집니다. 사품의 뱀은 그렇지 않습니다. 묵은 허물을 벗는 뱀의 모습은 업(業)을 벗어던지고 환골탈태하는 긍정적인 비유로 되풀이됩니다.

『숫타니파타』는 전체가 첫 구절처럼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쓰인 단어도 대체로 평이합니다. 그렇다고 쉬운 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은 초기 경전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층에 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매우 중요한 경전입니다. 우리가 중히 여기는 『금강경』『화엄경』『법화경』 같은 대승 경전은 대부분 불멸 후 500년은 족히 지나서 만들어졌습니다. 대승 경전이 붓다 본래의 표현과 달리 점점 어려워지고 때로는 불교답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에 비해 『숫타니파타』에서는 붓다의 육성에 가까운 가르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결하고 깔끔하며 경건한 여운을 남기는 경입니다. 이 경을 읽으면 붓다의 원음(原音)에 다가갈 수 있고, 힌두교의 교리가 불교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을 가려낼 수 있으며, 초기불교의 세계관으로 깨달음과 수행의 방법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연못에 핀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꺾듯이, 애욕을 말끔히 끊어 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이 경의 게송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으로 끝나고, 그 바로 앞 구절은 언제나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입니다. 이 경 전체가 '……한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이라는 틀로 짜여 있습니다. 이 구성으로 보면 핵심은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이고, 앞의 두 구절은 그렇게 버리기 위한 전제나 수행의 목표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나고 죽는 고통이 따르는 범부 중생의 삶입니다. 저 세상은 고통의 원인인 번뇌를 허물 벗듯 떨쳐 버린 세계, 곧 깨달음과 해탈, 열반의 세계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수행을 이룬 사람은 이 두 세상을 모두 버린다고 하니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고해의 사바세계인 차안(此岸)을 넘어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말하는데, 이 구절은 그와 부딪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숫타니파타』의 시각으로 풀어야 하는 대목입니다.

깨달으면 어떤 특정한 세계에 다시 태어나거나 다른 형태의 삶으로 바뀌어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이 세상을 버리고 저 세상에 자리 잡는다면 오히려 수행자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버린다는 것은 지금의 어떤 상황이나 경지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저 세상에는 천상(天上)이나 극락정토도 포함됩니다. 『아미타경』을 중심으로 한 정토사상은 대승불교가 일어난 뒤 대체로 기원후 1~2세기 무렵 정토 경전들이 성립하면서 자리 잡은 것으로 봅니다. 그보다 훨씬 이른 『숫타니파타』의 시대에는 정토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 구절은, 뱀이 허물을 벗듯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면 그렇게 얻은 마음의 평안에조차 머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그대로 불국토(佛國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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