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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 흐르는 갈애의 물줄기를 남김없이 말려 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수행자가 가장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애욕이라고 합니다. 붓다가 수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유혹을 받을 때 그 상대로 마왕(魔王)이 보낸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애욕이 인간의 근본 욕망이어서 수행의 끝까지 떨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간명하게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애욕은 동물인 인간이 종족을 유지하고 후손을 낳는 의무를 다하도록 유전자에 가장 크게 새겨진, 피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돌려 말할 것 없이 애욕은 성(性)을 전제로 하거나 성행위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성이 즐겁지 않다면 인류는 곧 사라질 것입니다. 생물학자들이 성을 동물의 의무라고까지 말하는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애욕이 인간에게 가장 많은 말썽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아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견주어 성에 유난히 큰 비중을 두는 쪽으로 발달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종족 유지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애욕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넘쳐 흐르는 갈애의 물줄기'라는 표현이 실감 나는 이유입니다.

인간을 동물처럼 다루는 설명이 불편하다면 역사 속 사례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상대를 얻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고, 어떤 가치도 애욕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여기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연극과 영화 '천일의 앤'으로 알려진 이야기가 딱 맞는 예입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형이 죽자 형수였던 캐서린과 결혼하고 1509년 왕위에 올랐습니다. 사랑보다는 스페인과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헨리는 궁정의 시녀였던 앤 불린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앤과 결혼하려면 큰 난관을 넘어야 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법으로는 캐서린과의 이혼이 결코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1533년 1월 헨리는 앤과 비밀리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교황과 주교의 명령을 받는 가톨릭을 버리고 국왕이 곧 교회의 수장인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세웠습니다. 애욕이 종교 개혁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그러나 앤이 왕위를 이을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3년 뒤 헨리는 그토록 원하던 앤에게 간통과 반역의 죄를 씌워 처형했습니다. 앤이 낳은 딸은 훗날 엘리자베스 1세로 왕위에 오릅니다. 사랑을 내세운 애욕의 노예가 된 한 사람이 얼마나 큰 불행을 불러오는지 헨리 8세의 생애가 잘 보여 줍니다.

애욕을 넘어선 수행자는 깨달은 이와 다를 바 없다는 붓다의 말씀은 인간 욕망의 급소를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다만 수행자가 아닌 사람에게 사랑은, 애욕에 빠져 다른 일을 그르치지만 않는다면 생명이 누리는 축복이고 고통을 덜어 주는 약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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