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라는 독
거센 흐름이 연약한 갈대 둑을 무너뜨리듯, 교만한 마음을 남김없이 없애 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는 생존에 필요해 아주 깊이 저장되어 있지만 목숨이 걸린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평생 한 번도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살면서 덧붙는 마음도 있습니다. 덧붙는 마음 가운데는 적응이나 화합 같은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집단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그 대표가 교만입니다.
교만은 상대를 깔보고 인정하지 않는 마음, '나는 너보다 잘났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보면 교만한 사람이 상대보다 무엇이 잘났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직위가 곧 인격인 줄 알고 교만에 빠지기도 하고, 배우자의 지위와 재력을 등에 업고 거리낌 없이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교만이 독이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에게는 애초에 남을 멸시할 권한이 없습니다. 또 교만을 떠받치는 것들도 모두 무상(無常)하여 언제 그 바탕이 무너질지 알 수 없습니다. 교만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심하면 삶에 좌절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결백을 호소해도 상대의 교만한 벽은 높아만 가고, 그 앞에서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 삶 자체에 회의를 품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애욕과 교만은 사람을 멍들게 하는 두 축입니다. 『숫타니파타』가 첫머리부터 이 두 악마를 항복시켜야 진정한 수행자라고 강조하는 까닭입니다.
꽃이 보이지 않는 나무
무화과나무에서 꽃을 찾아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존재를 항상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무화과나무는 꽃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꽃대가 없는 것은 아니고, 열매 주머니 속에 숨듯 꽃이 피어 겉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벗은 몸을 가린 잎이 무화과 잎이니, 종교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무입니다.
『숫타니파타』는 무화과의 꽃이 눈에 보이지 않듯 세상의 존재들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바른 수행자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항상 있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구절은 모든 존재를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모든 존재란 무엇일까요. 물질, 사상, 현상, 역사, 규범, 법칙, 가치 등 인간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유형·무형의 모든 것입니다. 모양이나 색깔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형체 없는 사상이나 논리, 주장도 모두 여기에 들어갑니다. 종교라는 틀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형체가 있는 것은 정해진 시간 동안만 모습을 유지하므로 당연히 항상 있지 않습니다. 태양과 지구도 수십억 년 뒤에는 지금의 모습을 잃습니다. 철학이나 사상, 역사적 진실에 대한 평가와 가치도 시대에 맞게 늘 다시 매겨집니다.
붓다는 당시 바라문들이 제물을 바치는 제사에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 남아 있는 사성 계급 제도 역시 근본적인 인간 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승단 안에서는 출가한 순서대로 예를 갖추게 하여 계급을 사실상 없애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실천했습니다. 인도에서 계급 타파가 현실에 적용된 것은 아마 이때가 역사상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붓다가 세상을 떠나고 수백 년이 지나자 붓다의 뜻과는 다른 불교가 형성됩니다. 인도 대륙 전반을 장악한 힌두교의 교리가 차츰 불교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윤회도 소나 개가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굳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다만 축생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사람 몸을 받는 이야기는 초기 경전에도 이미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먼 미래의 종교학 시간에는 이런 대화가 오갈지도 모릅니다. 옛날 불교에서는 개나 소 같은 축생도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했다는데, 그들이 할 수 있는 착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개, 소, 돼지, 개구리, 잠자리, 지렁이, 바퀴벌레 가운데 어디까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모든 존재를 항상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명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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