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온갖 번뇌 씻어내어 고해의 바다 건너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
속히 깨달음의 방편문을 증득하게 하여지이다
방편(方便)은 재미있는 말입니다. 중생이 불법을 이해하고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는 기발하고 그럴듯한 방법을 가리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중생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절대선(絶對善)이어야 방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원효가 나무아미타불을 노래처럼 입에 달고 다닌 것이 대표적인 방편입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불법을 모르는 사람도, 아미타불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노는 입으로 아미타불만 부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지들과 어울려서는 동냥 바가지를 두드리고, 장터에서는 덩실덩실 춤추고, 주막에서는 막걸리를 마시며 외친 나무아미타불보다 더 장엄한 염불은 찾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절에서 돈을 벌려고 정법(正法)에서 슬쩍 벗어나는 일까지 방편이라고 둘러댑니다. 점을 봐 주고 부적을 써 주는 것도 방편이라고 말하는 스님이 있을 정도입니다. 방편이라는 말이 이렇게 쓰여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이 보여 준 본래의 방편은 『법화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집 나간 아들과 부자 아버지
『법화경』의 방편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것이 「신해품(信解品)」의 비유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더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내용을 줄여 옮기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서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가 50년을 떠돌았습니다. 늙고 궁핍해진 그는 사방으로 빌어먹으며 다니다가 우연히 고향 쪽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헤매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한 도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들은 이 마을 저 마을, 이 도시 저 도시를 거쳐 마침내 아버지가 사는 그 도시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는 큰 부자가 되어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파리, 진주가 창고마다 가득했고, 노비와 일꾼, 코끼리와 말, 수레와 소와 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며, 재물을 빌려주고 거두어들이는 일이 이웃 나라에까지 뻗어 있어 드나드는 장사꾼도 매우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50년 동안 아들 이야기를 남에게 한 번도 꺼내지 않았지만 늘 속으로 탄식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흩어지겠구나, 아들을 만나 재산을 물려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거지가 된 아들이 품을 팔며 떠돌다 아버지의 집 대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멀리서 들여다보니 집주인은 사자좌에 앉아 보배 받침에 발을 올리고 있었고, 바라문(婆羅門)과 찰제리(刹帝利)와 거사(居士)들이 둘러앉아 공경하고 있었습니다. 진주와 보석으로 몸을 꾸몄고, 하인들이 흰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서 시중들었으며, 보배 휘장과 꽃 번(幡)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땅에는 향수가 뿌려지고 갖가지 꽃이 꾸며져 있었으며, 보물을 늘어놓고 주고받는 모습이 몹시 화려했습니다. 그 위엄에 압도된 아들은 덜컥 겁이 나 그곳에 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저 사람은 왕이거나 왕과 맞먹는 사람일 테니 나 같은 처지가 품을 팔 곳이 아니다, 여기 오래 있다가는 붙잡혀 강제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니 작은 동네로 가서 품을 팔자고 생각하고는 서둘러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한눈에 그가 아들임을 알아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늘 생각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비록 늙었어도 아들을 그리는 마음만은 그대로였습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습니다. 하인이 쫓아가 붙잡자 아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잡느냐며 몸부림쳤고, 하인이 더 다급하게 끌고 가려 하자 이대로 죽는구나 싶어 그만 땅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멀리서 이를 본 아버지는 하인에게 일렀습니다. 그 사람은 필요 없으니 억지로 데려오지 말고, 찬물을 끼얹어 깨운 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작고 졸아들어 있다는 것을, 자기의 부귀가 오히려 아들을 두렵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친아들임이 분명한데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인이 마음대로 가라고 풀어 주자, 아들은 다행으로 여기며 가난한 동네로 가서 밥벌이를 했습니다.
거름 치는 일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안심시켜 데려올 방편을 궁리했습니다. 행색이 초라한 두 사람을 몰래 보내며, 품삯을 다른 곳의 두 배로 주는 일자리가 있다고 전하게 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거든 거름 치는 일이고 자기들도 함께 일한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듣고 따라와 품삯부터 받고서 아버지의 집에서 거름을 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창밖을 보니 아들은 야위고 초췌했으며 온몸이 먼지와 거름투성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보석과 화려한 옷을 벗고 때 묻은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일부러 몸에 흙을 묻히고 거름 치는 도구를 들고 일꾼들 사이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다른 곳에 가지 말아라, 품삯은 차차 올려 주고 그릇이며 쌀, 밀가루, 소금, 식초 같은 것도 걱정하지 않게 해 주겠다, 너는 일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속이거나 화내거나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나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이제부터 너를 친아들처럼 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름을 새로 지어 주고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런 대우가 기뻤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머슴살이하는 천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거름을 치면서 주인과는 서로 믿고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지만, 잠자리는 여전히 처음 머물던 허름한 곳을 편하게 여겼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병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창고에 가득한 재물이 얼마인지 살피고 들고 나는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라고 아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아들은 그 말대로 창고를 관리했지만, 정직하여 밥그릇 하나도 제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고 거처도 옮기지 않았습니다. 작고 졸아든 마음만은 아직 다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얼마 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점점 넓어져 큰 뜻을 품게 되었고, 지난날의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친척과 국왕과 대신과 찰제리와 거사들을 불러 모으고 선언했습니다. 이 사람은 사실 내가 낳아 기른 친아들이며, 고향에서 나를 떠나 50년을 떠돌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과 자신의 이름까지 밝히고, 고향에서 애태우며 찾던 아들을 뜻밖에 여기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모든 재산은 이 아이의 것이며, 지금까지 내가 하던 출납도 모두 이 아이에게 맡긴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나는 이 재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 엄청난 보배 창고가 저절로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자와 궁자
이 이야기를 장자(長者)와 궁자(窮子)의 비유라고 합니다. 부자 아버지인 장자는 부처님이고, 가난한 아들인 궁자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의 그릇을 헤아려 겁먹지 않도록 낮은 데서부터 차근차근 이끌어,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상대를 살피며 끝내 이롭게 하는 지혜로운 방법이 『천수경』이 말하는 방편입니다.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모든 중생을 건지게 해 달라는 원과 중생의 세 성품 (0) | 2016.11.21 |
|---|---|
| 귀의하는 마음, 그리고 관세음보살께 올리는 첫 두 원 (0) | 2016.11.21 |
| 보리, 깨달음에도 빠질 수 있다 (0) | 2016.11.21 |
| 원력, 나를 넘어서는 바람의 힘 (0) | 2016.11.19 |
| 관세음, 세상의 소리를 살피는 수행 (0) | 2016.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