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약향화탕(我若向火湯) 화탕자소멸(火湯自消滅)
아약향지옥(我若向地獄) 지옥자고갈(地獄自枯渴)
내가 지은 악업이 많아 죽은 뒤 화탕지옥에 떨어지면 그 화탕지옥이 사라져 고통받지 않기를, 그리고 어떤 지옥으로 향하게 되더라도 그 지옥이 저절로 없어져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구절입니다.
끓는 가마솥의 지옥
화탕(火湯)은 화탕지옥을 가리킵니다. 끓는 물에 집어넣는 형벌을 받는 곳인데, 도산지옥처럼 한 번 들어가 살과 뼈가 녹아도 건져 내면 다시 온전한 몸으로 돌아와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서 겪는다고 합니다. 이런 지옥의 광경은 법당 벽화의 소재로도 종종 쓰입니다.
의사들도 인정하는 극심한 통증으로 흔히 심근경색, 암, 그리고 화상을 꼽습니다. 그 가운데 화상 환자의 고통은 치료 과정에서 더 커집니다. 다친 부위를 날마다 소독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환자는 거의 실신할 만큼 아파합니다. 화탕지옥은 그런 고통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화탕지옥의 온도는 얼마나 될까요. 여러 자료를 보면 대략 섭씨 1,000~2,000도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견주어 보면 암석이 녹아 액체가 되는 온도가 800~1,200도, 지구 중심의 온도는 약 5,000~6,000도로 추정됩니다. 태양은 중심부가 1,500만 도, 표면이 약 6,000도, 코로나는 추정치로 100만 도에 이릅니다.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에 들어올 때 마찰열로 달아오르는 외벽 온도는 1,430도로 측정되었습니다. 화탕지옥은 우주선 외벽만큼 뜨거운 가마솥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거듭하는 곳입니다.
놀랍게도 400도 가까운 물이 솟는 곳 바로 곁에서 사는 생물도 있습니다. 심해 생물 연구자들은 대서양 해저 화산 분출구 부근, 수심 3.2킬로미터 지점에 사는 새우를 보고했는데 분출구에서 뿜어 나오는 물이 400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새우가 그 물속에 몸을 담그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곳을 터전으로 삼는 새우라 해도 화탕지옥에 갈 만한 악업을 지었을 리는 없어 보입니다.
지옥은 언제 생겨났나
지옥은 불교만의 개념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종교라는 틀이 생기면서 악한 이들이 죽어서 가는 곳으로 지옥이 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과 같은 징벌적 지옥관(地獄觀)이 기원전 6세기 무렵 시작된 조로아스터교, 곧 불을 섬긴다 하여 배화교(拜火敎)라고도 부르는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조로아스터교의 시작을 기원전 1,200년 무렵으로 보는 설도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세계 종교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실재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고, 여기서 궁금한 것은 종교마다 지옥이 보편화된 동기입니다.
3,000년쯤 전인 기원전 8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 최초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그려진 지옥의 원형을 보면 지옥은 죽은 사람이 가는 땅속 깊은 곳의 어둡고 음산한 장소이면서도 산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 정도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가장 위대한 음악가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상심한 오르페우스는 산 몸으로 저승에 아내를 찾으러 갑니다. 갖은 고생 끝에 저승에 이른 그가 눈물로 노래하자 저승의 신이 감동하여 에우리디케를 함께 돌려보내 줍니다. 단, 이승에 닿을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승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그만 아내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 버립니다. 이승에 홀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눈물로 세월을 보냅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오페라로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글루크(1714~1787)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대표적입니다. 극의 내용처럼 처절한 아리아가 많고,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잃고 부르는 아리아가 특히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공연할 수 있는 대본과 악보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초기 오페라 가운데 손꼽히는 걸작이기도 합니다.
종교가 만든 지옥
결국 지옥은 종교가 활발해지면서, 잘못 믿거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극대화하려고 양과 질 모두에서 다양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가 생기기 전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에 기대던 시절에는 오히려 징벌 개념의 지옥이 없었습니다. 극락이나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위였든 지옥과 극락은 종교가 만든 것입니다. 가톨릭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煉獄)을 두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정거장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지옥이라면 불교가 상정한 것이 어느 종교보다 다양하고 끔찍합니다. 크게 8대 지옥이 있고, 죄의 무게에 따라 각 지옥마다 다시 16개의 지옥으로 나뉘며, 여기에 대지옥과 소지옥 등을 더해 136가지 지옥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론(地獄論)만큼은 불교를 따라올 종교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천수경』이 도산지옥과 화탕지옥을 말한 뒤에 다시 지옥 전체를 들어, 지옥에 가더라도 제발 그 지옥이 없어지게 해 달라고 관세음보살께 부탁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불교에서 지옥은 정말로 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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