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천수보살 마하살(南無 千手菩薩 摩訶薩)
나무 여의륜보살 마하살(南無 如意輪菩薩 摩訶薩)
나무 대륜보살 마하살(南無 大輪菩薩 摩訶薩)
나무 관자재보살 마하살(南無 觀自在菩薩 摩訶薩)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차례로 귀의합니다. 첫머리의 천수보살(千手菩薩)은 관자재보살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는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손이 천 개인 보살이라는 이 이름은, 모든 중생을 건지려면 손이 그만큼 많아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중생을 돌보는 데는 손만큼 눈도 많아야 하므로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거의 한 낱말처럼 붙여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라고도 부릅니다. 불상 뒤로 후광처럼 둥글게 수많은 손을 새겨 넣은 상이 바로 천수보살입니다.
천이라는 숫자는 많음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손이 정말 천 개라면 오케스트라 연주를 혼자 해낼 수도 있겠지만, 한겨울에 장갑을 끼려면 전날부터 채비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의륜보살(如意輪菩薩)은 여의주(如意珠)와 법륜(法輪)을 함께 갖추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데서 온 이름입니다. 여의주는 생각하는 대로 소원을 이루어 주는 구슬이고, 법륜은 가르침의 수레바퀴입니다. 먼저 여의주로 중생의 바람을 들어주고, 그 인연을 계기로 불법으로 이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손오공이 지녔다는 여의봉과는 쓰임새부터 다릅니다.
대륜보살(大輪菩薩)은 큰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여의륜보살의 '륜(輪)'을 한층 앞세운 이름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이렇게 부를 까닭은 충분합니다. 중생을 건지는 방편에서 으뜸이고, 이미 중생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출가자든 재가 신도든 석가모니불 다음으로 가장 또렷이 떠올리는 이름이 관세음보살이고,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은 귀에 익은 말입니다. 대륜의 큰 대(大) 자를 몇 번이고 덧붙여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고, 그에 걸맞은 위신력을 갖춘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과 관자재는 어떻게 다른가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도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며,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쓰입니다. 경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보살 역시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런데 경전에 따라 관세음이라 부르기도 하고 관자재라 부르기도 합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로,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로 나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번역자가 달라서 생긴 차이입니다. 『법화경』을 옮긴 구마라집은 관세음으로, 『반야심경』을 옮긴 현장은 관자재로 옮겼습니다.
다만 두 이름의 뜻을 경전 속 주인공의 성격에 견주어 이렇게 풀이하기도 합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구제의 보살로 나올 때는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수행을 닦아 가거나 이미 이루어 마음이 자재한 경지에 오른 보살로 나올 때는 관자재보살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두 이름[稱名]은 경전에 등장하는 주체의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보문품」의 주인공은 중생 구제를 완벽하게 해내는 보살이므로 관세음보살이고, 『반야심경』의 주인공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깨달음을 철저히 추구하는 수행자이므로 관자재보살입니다.
『천수경』은 이 둘을 다 품고 있습니다. 본래 경 이름인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에는 중생을 건지는 보살의 모습과, 수행을 완성해 마음이 원만하고 자재해진 보살의 경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경 이름에 두 성격이 겹쳐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사이에 두고 앞뒤의 결이 크게 달라 핵심을 붙잡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앞쪽 '아약향지옥' 같은 구절에서는 죄를 지어 지옥에 가게 되면 관세음보살께 건져 달라고 발원합니다. 스스로 지옥을 벗어나겠다는 자신감을 세우기보다 관세음보살에게 기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뒤쪽 '죄무자성종심기'에서는 죄에는 본래 자성이 없다고 하여, 지옥에 가고 안 가고가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는 쪽으로 말합니다. 신앙의 불교와 수행의 불교가 곳곳에 함께 있고,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뒤섞인 경이 『천수경』입니다. 해설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적인 모순을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관하는 수행
관세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연은 『능엄경』 권6에 나옵니다. 이름의 유래를 경전 속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한 대목입니다.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는 말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다시 이 듣는 놈을 훈습하고 듣는 놈을 닦는 금강삼매의 작위(作爲)가 없이 오묘한 힘으로 시방 삼세 육도의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애절한 우러름이 같으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저의 몸과 마음에서 열네 가지 두려움 없는 공덕을 얻게 하겠나이다. (중략) 제가 처음으로 오묘하고 오묘한 듣는 마음을 얻고서 마음이 청밀해지고 들음을 버릴 수 있게 되어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따로이 막히는 것이 없어서 하나로 원만하게 융통하고 청정한 보배의 깨달음을 이루었으므로 (중략) 세존이시여! 저 부처님께서 제가 원만하게 통하는 법문을 훌륭하게 증득하였다고 찬탄하시고 큰 모임에서 저에게 수기하여 '관세음'이라 하였으니, 이는 저의 들음을 관함으로 말미암아서 시방이 원만하게 밝았으므로 관세음이란 이름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듣는 성품을 닦아 마음이 맑아지고,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일이 서로 막힘 없이 하나로 통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소리[世音]를 관찰[觀]하는 것을 수행의 뿌리로 삼아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부처님께 관세음이라는 이름을 수기(受記)받았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통해 얻은 경지를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합니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천둥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든 나를 헐뜯거나 추어올리는 사람의 말이든, 듣기는 다 듣되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관세음보살과 같은 수행을 하는 것이고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닦는다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이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이 소리 수행을 일상에 들여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행하는 마음을 키워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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