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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은 도량을 찬탄한 다음 참회하는 게송, 참회게(懺悔偈)로 넘어갑니다.

참회(懺悔)는 어느 종교에서나 가장 중요한 의식이지만, 불교에서는 참회 자체가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이미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라는 참회 의식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경전에 남아 있습니다.

포살과 자자

포살은 비구들이 보름마다 부처님이나 큰 비구를 모시고 계본(戒本)을 읽는 의식입니다. 이때 계(戒)를 어긴 비구는 대중 앞에서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계율(戒律)은 승단이 생기고 나서 꽤 시간이 흐른 뒤 차츰 제정되었으니, 포살도 부처님 재세 후반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한 것은 승단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석가모니 부처님도 자자 때 누구보다 먼저 대중에게 자신의 몸과 말에 허물이 없는지 지적해 달라고 청했다고 아함경에 전한다는 점입니다.

자자는 해마다 여름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 지금으로 치면 음력 7월 보름 백중, 곧 우란분일에 비구들이 허물없이 서로를 비판하고 탁마하며 각자 참회하고 정진을 다짐하는 의식입니다. 백중을 사십구재처럼 천도재의 마지막 날로 엮는 새로운 비법(非法)으로 신도들의 주머니 사정을 자꾸 어렵게 만들 일이 아닙니다. 이런 귀한 의식을 되살리는 것이 한국 불교가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참회가 수행의 기본이라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당연합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거나 자기 잘못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종교적 성취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불교에는 후대로 갈수록 많은 참회법이 생겨났습니다.

자비도량참법

수많은 참회법 가운데 으뜸은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입니다.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세상을 떠난 황후를 위해 닦은 참회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의 샤 자한(1592~1666)이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난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타지마할을 지은 것처럼,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 낳은 결과입니다. 샤 자한이 왕실의 무덤 건축을 남겼다면, 양 무제는 자비도량참법이라는 참회법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자비도량참법은 모든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절하고 참회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고, 인과의 법칙 같은 불법의 이치를 밝힌 경전이기도 합니다. 우리말 번역본도 나와 있으니, 참회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해 볼 만합니다.

사참과 이참

참회는 참회하는 이의 마음가짐과 방법에 따라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흔히 하는 사참은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을 절이나 염불, 독송 등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이참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에 본래 선이니 악이니 하는 자성(自性)이 없음을 깨달아, 분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고요함[寂靜]을 얻는 참회법입니다.

『천수경』이 이참과 사참을 모두 다루는 것도 그만큼 참회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아석소조제악업'부터 '멸진무유여'까지는 사참이고, '죄무자성종심기'부터 '시즉명위진참회'까지는 이참입니다. 사참을 한 뒤에 이참으로 나아가는 구조가 『천수경』의 참회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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