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의 둘째 경은 소를 치는 다니야가 한 마디를 하면 붓다가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다니야는 많은 소를 거느리고 아들 일곱, 딸 일곱을 둔 부자였습니다. 붓다의 답을 들은 다니야와 그의 아내, 두 딸은 깊은 진리에 이르렀다고 전합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방에는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미혹(迷惑)을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 버렸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앞의 것이 다니야의 말이고 뒤의 것이 붓다의 대답입니다. 마히(Mahī) 강은 경전에서 갠지스 강, 야무나 강 등과 함께 다섯 큰 강의 하나로 꼽히는 강으로, 갠지스 유역에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 인도 서부를 흘러 바다로 드는 같은 이름의 마히 강과는 다른 강입니다.
이 경은 앞 구절에 뒤 구절이 답하는 식으로 이어지고, 모든 구절이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로 끝납니다. 여기서 '하늘'의 원어는 데바(deva)로, 하늘, 구름, 신 같은 여러 뜻을 지닌 말입니다. 그래서 "신이여"로 옮긴 번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가 여러 신을 받드는 바라문들을 꾸짖었던 것을 생각하면, 날씨를 바꾸는 자연의 하늘로 읽는 편이 더 맞아 보입니다.
되풀이되는 이 후렴은 준비를 다 마쳤으니 우기(雨期) 몇 달 동안 비가 계속 내려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다만 다니야가 말하는 준비는 세속의 살림살이이고, 붓다가 말하는 준비는 번뇌라는 비를 이미 다 항복시켰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말을 나란히 놓아 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다니야는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방에는 불을 지폈다"고 했고, 붓다는 "내 움막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 버렸다"고 했습니다. 움막이 드러났다는 것은 마음에 감출 것이 없이 맑다는 말이고, 탐욕의 불이 꺼졌다는 것은 이미 꺼진 불이니 비가 와도 더 꺼질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탐욕을 이미 다스렸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지는 구절들도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뗏목이 필요 없는 사람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들은 늪에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비가 와도 견디어낼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욕망의 거센 흐름에도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彼岸)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뗏목이 소용없노라.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두 번째 구절의 주제는 욕망입니다. 붓다는 비를 욕망에 빗대어, 큰비로 물살이 아무리 거세져도 저 언덕으로 건너갈 뗏목이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피안에 닿았다는 선언입니다.
『숫타니파타』 전체의 가르침은 욕망에서 벗어나야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한 가지로 모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생의 욕망은 종류가 많고 끝이 없기 때문에, 경은 그것을 하나하나 들어 가며 집착에서 벗어나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런데 집착에서 벗어나면 될 일을 두고, 생각 자체가 없어져야 깨달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은 뇌에서 일어나는 반사 작용이고, 그것이 멈추면 식물인간이나 뇌사(腦死) 상태가 됩니다. 대소변이 마렵고, 목이 마르고, 모기에 물리면 가렵고, 잠이 오면 자야 하는 것처럼 생각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깨달으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야말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욕망은 이와 다릅니다. 목이 마를 때 물보다 훨씬 나은 무엇을 마시고 싶어 하고, 졸릴 때 꼭 어떤 침대에서 자고 싶어 하는 마음, 이런 것이 욕망입니다. 그렇게 보면 물질이 풍족해질수록 욕망은 더 다양해지고 다스려야 할 번뇌도 늘어나는 듯합니다. 아파트 걱정도 과외비 걱정도 없던 2,500여 년 전 다니야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번뇌 많은 세상에 사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집착은 기쁨인가, 고통인가 (0) | 2017.02.11 |
|---|---|
|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한다 (0) | 2017.02.11 |
| 뱀이 묵은 허물을 벗듯이 (0) | 2017.02.07 |
|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미움을 넘어서 (0) | 2017.02.05 |
| 화와 잡념을 다스리는 수행자 (0) | 2017.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