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야와 붓다의 문답이 끝나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렸고,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습니다. 빗소리를 들은 다니야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것이 크다며, 눈을 갖춘 분께 귀의하겠으니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합니다. 아내와 함께 그 곁에서 청정한 행을 닦아 생사가 없는 피안(彼岸)에 이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악마 파피만이 나서서 말합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이 집착하는 대상은 바로 기쁨이다. 집착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붓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 때문에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걱정한다. 사람이 집착하는 대상은 결국 고통이니라.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당할 것도 없느니라.
다니야가 붓다를 부른 '눈을 갖춘 이'의 눈은 지혜의 눈입니다. 사물이나 상황을 판단할 때 '나'라는 주체와 집착을 앞세우지 않고, 연기(緣起)라는 우주의 이치에 맞게 모든 것을 가늠하는 안목을 말합니다.
다니야가 그런 분을 스승으로 모시려고 마음을 내자, 파피만은 집착이 곧 기쁨이라며 그 마음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붓다는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답해 악마를 굴복시킵니다. 이 장면이 이 구절의 내용이고, 다니야의 경 전체가 전하려는 핵심입니다.
여기서 악마라는 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경전에는 파피만(papiman)이나 파순(papiyas) 같은 여러 이름의 악마가 나옵니다. 모두 수행을 방해하는 존재로, 수행자가 집착을 떠나 무상의 이치를 깨치려 할 때마다 나타나 달래거나 가로막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악마는 다른 종교의 악마와 성격이 다릅니다. 기독교의 사탄(Satan)처럼, 많은 종교는 악마를 영적이고 초능력을 지닌 실제 존재로 봅니다. 불교의 악마는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행을 가로막는 내 마음속의 나쁜 생각과 습관, 집착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굴복시킬 수 있는 대상이지, 바깥에 따로 있어서 쳐부수어야 할 상대가 아닙니다.
가톨릭에는 악마를 쫓아내는 엑소시즘(exorcism), 곧 퇴마(退魔) 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붓다는 실재하는 악마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귀신을 쫓는다는 식의 행위는 불법(佛法)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일입니다.
다니야의 경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집착이 곧 악마이고 집착하는 마음이 고통을 부르니, 어떤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악마를 굴복시키고 고통에서 벗어나며, 끝내는 윤회에서도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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