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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는 착하고 욕심도 없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듭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다. 오랜 수행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다니야의 세 번째 말에 붓다가 답한 구절입니다. 이제 문답의 형식은 익숙해졌으니 붓다의 말 가운데 핵심만 짚어 보겠습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자기 삶을 돌아보며 마흔에 불혹(不惑), 쉰에 지천명(知天命), 예순에 이순(耳順), 일흔에 종심(從心)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불혹은 세상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아는 것, 이순은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종심은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의 눈으로 보면 이 가운데 지천명과 종심이 눈에 띕니다. 지천명은 '나'라는 주관을 감싸 안는 더 높은 보편의 기준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이고, 공자는 그 기준을 하늘의 뜻, 곧 천명이라 불렀습니다. 불교에서는 그 보편의 기준을 연기(緣起)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심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도 걸림이 없는 경지입니다.

『숫타니파타』의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는 『논어』의 말로 하면 지천명과 종심을 넘어선 자리입니다.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의식해서 다스린다는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는 경지를 가리킵니다.

고삐를 끊은 황소

이어지는 네 번째 문답과, 소와 송아지 이야기가 한 차례 더 오간 뒤의 여섯 번째 문답은 이렇습니다. 다니야가 자기는 놀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가며 아이들도 모두 건강하다고 하자, 붓다는 자신은 누구에게도 고용되지 않았고 스스로 얻은 것으로 온 세상을 다니니 남에게 고용될 까닭이 없다고 답합니다.

다니야가 다시 소를 맨 말뚝은 땅에 단단히 박혀 있고, 문사초(文邪草)로 꼰 새 밧줄은 송아지도 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붓다는 이렇게 답합니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인간의 모태(母胎)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문사초는 갈대처럼 키가 크게 자라는 풀인데, 이 풀로 엮은 밧줄은 아주 질겨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었다는 말은 어떤 번뇌와 집착의 고삐도 붓다를 붙잡아 두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았다는 말은 썩은 냄새가 나는 몸의 실상을 꿰뚫어 보았다는 말입니다.

붓다는 몸의 욕망을 다스리는 실제 수행법으로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쳤습니다. 내 몸이든 상대의 몸이든 겉은 살갗에 싸여 그럴듯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창자 속의 배설물과 고름, 피, 오줌, 가래 같은 것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몸의 쾌락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성에 대한 욕정을 누르기 어려울 때 상대의 입속 침과 가래, 몸속의 똥오줌을 떠올리면 그 더러움 때문에 욕정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붓다가 가르친 초기의 수행법은 대부분 이런 관찰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몸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유난히 강한 사람은 무덤 한가운데서 지내게 하여, 썩어 가는 살과 짐승이 물어뜯다 버린 뼈를 보며 몸의 허망함을 스스로 느끼게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욕망과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났기에 붓다는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윤회의 세계를 벗어났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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