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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 바라드바자가 밭을 갈다가 일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을 때, 탁발을 나온 붓다가 그 곁에 섰습니다. 바라드바자는 음식을 얻으려고 서 있는 붓다를 보고 말합니다. 자기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으니, 사문(沙門)인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으라는 것입니다.

붓다는 자기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에 먹는다고 답합니다. 바라문은 고타마의 멍에도 쟁기도 호미도 작대기도 소도 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렇게 말하느냐고 따지고, 시로써 다시 묻습니다. 당신이 밭을 간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붓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믿음이 씨앗이고,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부끄러움은 괭잇자루, 의지는 쟁기 매는 끈, 생각은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붓다는 이어서 몸을 삼가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해 과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진실을 잡초 베는 낫으로 삼고, 온화함으로 멍에를 내려놓으며, 속박에서 평안으로 나아가는 정진을 짐 싣는 소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근심 없는 곳에 이르러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이렇게 밭을 갈면 죽지 않는 열매를 거두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 놀란 바라드바자는 계를 받고 출가해 성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바라문과 사문

이번에는 바라문이 묻고 붓다가 답하는 형식입니다. 바라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바라문교와 힌두교의 차이도 짚어 두겠습니다. 바라문교는 고대 인도의 경전 베다(Veda)의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한 종교로, 브라만교라고도 부릅니다. 둘을 구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힌두교는 바라문교에 인도의 토착 신앙이 합쳐져 생긴 종교인데, 때로는 인도에서 생긴 모든 종교를 통틀어 가리키기도 합니다. 힌두(Hindu)라는 말 자체가 인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경에 나오는 바라문(婆羅門)은 바라문교를 믿는 사람, 곧 붓다 이전부터 브라만(Brahman) 신앙에 의지해 온 수행자입니다. 바라문은 인도의 신분 제도인 카스트(caste)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고, 붓다는 그다음 계급으로 왕족과 귀족, 무사가 속한 크샤트리야(kshatriya) 출신입니다. 사문은 바라문 전통 밖에서 집을 떠나 수행하던 이들을 두루 가리키는 말로, 붓다와 그 제자들도 사문이라 불렸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사나 노동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의 농사를 짓는 일이 곧 뛰어난 수행이라는 가르침으로 읽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적어도 천 년쯤 지난 뒤, 중국의 백장(百丈, 749~814) 선사는 정반대로 보이는 규범을 세웁니다. 백장청규(百丈淸規)라 불리는 여러 규범 가운데, 절, 특히 선 수행을 하는 도량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으로 알려진 이 규범은 지금 한국 불교에서도 큰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이 규범이 나온 배경으로는 당시 중국의 유교와 도교 쪽에서 불교 승려들이 농사도 짓지 않고 먹고 베도 짜지 않고 입는다고 비난했던 일이 흔히 꼽힙니다. 그 비난에 대한 대안이었다는 것입니다.

경전이든 선사나 조사(祖師)의 말이든, 그 말이 나온 당시의 상황을 함께 헤아려야 가르침의 본래 의도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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