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급고독원에 머물 때, 한밤의 어둠을 밝히며 하늘 사람 하나가 찾아와 예를 올리고 시로써 묻습니다.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문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급고독원은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을 줄인 이름으로, 붓다가 제자들과 함께 머문 사원입니다. 『금강경』 첫머리에 "붓다께서 한때 기수급고독원에서 1,250명의 제자와 함께 계셨다"고 나오는 바로 그곳입니다. 규모가 컸고 설법도 자주 열렸던 곳이 분명합니다.
여기 나오는 하늘 사람은 흔히 '신'으로 옮겨지지만, 실제로 허공에 머무는 어떤 존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붓다는 바라문들이 여러 신을 받들며 공물을 바치고 짐승을 제물로 잡는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경에는 "바라문들이여, 너희가 섬기는 신 가운데 하나가 내게 와서 법을 물었다"는 간접적인 꾸짖음이 담겨 있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붓다가 들려주는 열두 가지 파멸의 문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시간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입니다. 따로 설명을 붙이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됩니다.
열두 가지 문
하늘 사람의 물음은 이렇습니다.
파멸하는 사람에 대해서 붓다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붓다께 묻고자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붓다는 먼저 잘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고 망하는 사람도 알아보기 쉽다고 말합니다. 둘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잘되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파멸한다.
하늘 사람은 그때마다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것이 첫째 파멸의 문입니다. 둘째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문을 묻습니다. 이 문답이 열두 번 이어집니다. 붓다가 차례로 든 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둘째 문은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고 착한 사람을 멀리하며, 나쁜 사람이 하는 일을 즐기는 데 있습니다. 셋째로 붓다는 아무 때나 자는 버릇, 어울려 놀기를 즐기는 버릇, 정진하지 않는 게으름, 잘 내는 화를 듭니다. 넷째 문은 붓다의 말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자기는 풍족하게 살면서 늙어 쇠약한 부모는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수행자나 사문, 걸식하는 이를 거짓말로 속이면 다섯째 문에 들어섭니다. 재물과 황금과 먹을 것이 넘치는 사람이 맛있는 것을 혼자만 먹는다면 그것이 여섯째 문입니다. 일곱째는 혈통을 뽐내고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정작 자기 친척은 업신여기는 사람입니다.
여덟째는 여색에 빠지고 술과 도박에 미쳐 버는 대로 다 써 버리는 사람, 아홉째는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매춘부와 어울리거나 남의 아내를 넘보는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이 지난 남자가 팀바루 열매 같은 불룩한 가슴을 가진 젊은 여인을 유인하여, 그녀에 대한 질투심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이것이 열째 문입니다. 팀바루(timbaru)는 인도의 나무 열매인데, 경은 그 둥근 모양을 여인의 가슴에 빗댔습니다.
열한째는 술에 취하고 재물을 헤프게 쓰는 사람에게, 그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집안일의 실권을 맡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열두째 문은 이렇습니다.
왕족의 집안에 태어나더라도 권세는 작은데,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붓다는 세상에 이러한 파멸의 문이 있음을 잘 살피는 현명한 사람은 진리를 보고 행복한 세계에 이른다고 말하며 답을 마칩니다.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숫타니파타가 자비를 짧게 말한 까닭 (0) | 2022.03.24 |
|---|---|
| 사람을 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0) | 2017.02.16 |
| 도를 더럽히는 수행자를 가려내는 법 (0) | 2017.02.14 |
| 마음의 밭을 가는 사람 (0) | 2017.02.14 |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