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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중생들에게 큰 자비심을 일으키사
보시바라밀을 수행하여
그 몸이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우사
보는 이마다 다 기뻐하도다

 

『화엄경』에 나오는 법계 보살의 게송입니다. 보시바라밀이 무엇인지는 본생담에 전하는 사슴 이야기 하나가 잘 보여 줍니다.

꽃사슴 이야기

옛날 인도의 한 왕은 사냥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신하들을 시켜 사슴을 잡아 우리에 가두어 두고, 하루에 한 마리씩 풀어 놓고는 활로 쏘아 죽이며 즐겼습니다. 우리 안의 사슴들은 날마다 한 마리씩 죽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사슴 무리의 우두머리가 모두를 불러 모았습니다. 오늘 끌려 나가든 한 달 뒤에 끌려 나가든 결국은 모두 왕의 화살에 죽을 목숨이고, 지금은 매일 밤을 공포 속에 지새우고 있으니 차라리 사냥감이 될 순서를 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며칠만이라도 죽음을 잊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에 사슴들은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루라도 불안과 두려움을 덜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 뒤로 사슴들은 약속대로 제 차례가 오면 동료들을 위해 순순히 우리 밖으로 나가 화살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어느 아침, 그날 나갈 차례인 사슴은 마침 새끼를 배고 있었습니다. 뱃속의 새끼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자 다른 사슴 한 마리가 나섰습니다. 오늘은 자기가 대신 나갈 테니 당신은 맨 마지막에 나가면 된다고, 그러니 당분간이라도 슬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슴은 약속대로 스스로 우리 밖으로 나가 화살을 기다렸습니다. 활을 겨누던 왕은 문득 활을 내리고 곁의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슴은 다른 사슴과 달리 무늬가 곱고 털에 윤기가 흐르니 꽃사슴인 것 같다, 저 예쁜 사슴은 죽이고 싶지 않으니 다른 사슴을 내놓아라.

그러자 꽃사슴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결국 죽을 목숨이라면 제가 며칠을 더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꽃사슴은 그동안의 사정과 자기가 대신 나오게 된 까닭을 왕에게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왕은 크게 뉘우치고 우리 안의 사슴을 모두 풀어 준 뒤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습니다.

보시는 욕심을 다스리는 수행

이야기는 그 꽃사슴이 전생의 부처님이었다는 말로 끝납니다. 수행으로서의 보시바라밀의 근본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우화 같은 이야기는 본생담(本生譚)에 실린 547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생담은 부처님이 여러 몸을 받아 보살행을 닦던 시절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모은 책입니다.

보시바라밀을 흔히 공덕을 짓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시로 얻는 공덕을 제 욕심을 이루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과는 팔만사천 리만큼 멀어집니다. 그것은 보시라기보다 투자에 가깝습니다. 만 원을 보시하면 그보다 많은 수입이 돌아온다는 셈법입니다. 많은 절이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신도들 가운데서도 보시의 참뜻을 아는 이가 드문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보시바라밀은 스스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의 기본 마음가짐입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불자라면 보시와 투자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화엄경』도 결국 보시바라밀을 비롯한 10바라밀을 수행의 단계와 이어 구체적으로 풀어 가는 경전입니다. 그만큼 바라밀은 『화엄경』을 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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