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몸 세계 티끌 같으사 법비를 널리 쏟으시되
태어남도 없고 차별도 없어서 모든 세간에 나타나시네
사자 보살의 게송입니다. 큰 뜻은 앞서 본 법희혜 보살의 게송과 비슷합니다. 거기서 말한 장광설을 여기서는 법비(法雨)라고 바꿔 놓았다고 보아도 됩니다.
비가 내리면 풀과 나무가 물기를 머금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비는 숲의 나무와 꽃을 가려 가며 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꽃들은 같은 빗물을 받아 저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핍니다. 노란 꽃에 노란 비가, 붉은 꽃에 붉은 비가 따로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중생에게 내리시는 법의 비도 이와 같습니다. 게송의 말처럼 태어남도 없고 차별도 없는 비, 곧 자비의 비입니다.
『법화경』 「약초유품」에도 같은 비유가 나옵니다.
이 모든 중생들이 법을 듣고는, 현세에서는 편안하고 내생에서는 좋은 곳에 태어나 도의 쾌락을 받고 법을 듣기도 하여, 법을 다 듣고는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 모든 법에서 그의 능력을 따라서 점점 도에 들어가게 되나니, 마치 저 큰 구름이 모든 초목과 숲과 모든 약초에 비를 내리면, 그 종류와 성질에 맞게 물기를 받아 각각 자람과 같으니라.
부처님은 나고 사라짐을 떠나고 차별도 벗어난 법으로 세간에 가르침을 펴십니다. 그런데 중생은 도리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자기 업(業)은 잊은 채 일이 뜻대로 안 되면 남을 탓하고, 수십 년 불교를 믿어도 좋은 일이 없었다며 마음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를 그대로 말하면 「불교를 믿으면 내가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고, 더 나아가면 「수십 년 동안 부처님께 속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일을 두고 신도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바른 불법으로 이끌지 못한 승가가 깊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스님들이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생각이 아무 거리낌 없이 생겨날 수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그렇다고 신도들이 큰소리칠 형편도 아닙니다. 제대로 일러 주는 스님에게 제대로 배우려는 신도가 드문 것 또한 우리 불교의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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