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이 법계에 두루하사
모든 국토 가운데서 위없는 법륜을 항상 굴리시네
정진 보살의 게송입니다. 언어와 문자는 뜻을 전하고 사물을 설명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실상을 비틀고 생각을 좁은 틀에 가두는 약점도 있습니다. 무언가가 최고라고 말하고 싶을 때 우리가 「말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겨울이면 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학교에서 눈의 결정을 배우고, 겨울 창에 낀 성에에서 그 모양을 직접 확인합니다. 보면 되니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영상 2~3도에도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오는 열대 지방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얼음이야 냉장고에서 얼리면 되지만,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 광경을 그곳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요. 소금의 짠맛과 간장의 짠맛은 또 어떻게 견주어 설명할까요.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조차 그 자체를 이해시키기는 이렇게 어렵습니다. 하물며 사람의 정신이 미치는 범위를 넘어서는 개념을 말로 나타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고른 차선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불교에서는 인간의 범주를 넘는 개념이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할 뿐입니다. 정통 기독교의 신은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을 처음부터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선(禪) 수행을 으뜸으로 삼는 이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字), 곧 문자에 기대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매우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게송의 비로자나 부처님(비로사나불)은 법신불(法身佛)을 가리킵니다. 불법에 무슨 생김새가 있어서 몸 신(身) 자를 붙이느냐고 물으면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언어의 한계부터 길게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전식으로 풀면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른 깨달음의 경지를 부처의 인격으로 나타내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비로자나라는 말은 본래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 경전에도 빛을 진리에 견주는 구절이 있듯이, 사람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진리를 예로부터 빛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에 기대어 부르다 보니 비로자나불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이 경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만다라입니다. 법당의 부처님 뒤에 거는 탱화를 넓은 뜻에서 만다라로 보기도 하며, 여기에는 밀교의 영향도 있습니다.
게송을 정리하면, 중생을 건지려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이 온 우주에 두루 미쳐 더없이 귀한 법의 수레바퀴를 늘 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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