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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가운데서 한량없음을 알고 한량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알아
그것이 서로 함께 일어남을 알면 마땅히 두려울 바 없음을 이루리라

 

문수사리 보살의 이 게송은 피해 갈 수 없는 큰 산입니다. 화엄 사상의 본질이 여기 담겨 있어서, 이 게송 하나만으로도 해설서 한 권은 족히 써야 할 정도라, 설명을 시작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나 가운데 한량없음이 있다」는 것은 어떤 개체든 그 하나 안에 우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주의 시작

첫 번째는 빅뱅(Big Bang)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우리와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인정받는 우주 탄생 이론입니다.

빅뱅 이전을 설명하려는 한 가설에 따르면 백수십억 년 전 우주는 무(無)에서 터널 효과(tunnel effect)로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무는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에너지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양자론의 입장에서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시간, 공간, 에너지는 하나의 값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요동합니다. 이렇게 요동하는 무의 진공 상태에서 생긴 아주 높은 에너지가 빅뱅의 방아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태어난 우주는 끝이 없으면서 닫힌 3차원 공간이었고, 그 지름은 양자론이 허용하는 가장 작은 길이인 10의 마이너스 33제곱 센티미터, 시간은 양자론이 허용하는 가장 짧은 10의 마이너스 44제곱 초에서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소립자보다 작은 이 우주가 인플레이션이라는 엄청난 팽창을 일으켰습니다. 지름 1mm 구슬이 1초의 1조분의 1의 1조분의 1의 100억분의 1 사이에 1000억 광년 크기로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은 팽창이었다고 합니다.

빅뱅 이론은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지만, 아무 이유 없이 무에서 어떻게 빅뱅이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이는 영국의 한 이론물리학자입니다. 그의 이론은 우주가 태어나는 순간에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쪽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런 이론들은 아직 관측으로 확인되지 않은 가설입니다. 그래서 그가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는 농담까지 나왔습니다.

우주론 강의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이 정도로 줄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나를 포함한 우주, 곧 모든 존재와 그 존재의 가치가 하나에서 출발해 지금은 한량없이 펼쳐져 있다는 점입니다. 게송 첫 구절을 우주론으로 증명한 것이라 할 만합니다.

가장 작은 것을 쪼개는 장치

두 번째는 입자가속기입니다. 전자나 양성자 같은 입자를 원자 등에 충돌시켜 소립자를 이루는 더 작은 입자를 연구하는 장치로, 물리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좁쌀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려면 쪼개 보아야 하는데, 망치로 내리치면 뭉개져 버립니다. 좁쌀보다 훨씬 작은 것으로 깨야 속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보려는 것이 원자나 전자라면 적어도 전자만 한 입자를 서로 부딪쳐야 하고, 두 입자가 부서질 만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입자가속기입니다. 소립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하는 일은 결국 우주를 이루는 가장 작은 하나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입니다.

대형 연구용 가속기는 세계에 많지 않은데, 국내에도 연구용 가속기가 세워졌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에서는 30여 개 나라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둘레가 27km에 이르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만들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실험실이라 할 이 장치로 하려는 일 가운데 하나는 티끌보다 작은 우주가 대폭발로 생겨난 직후의 상태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우주가 한량없는 것임을 밝히려고 가장 작은 하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과학자들의 눈이 걱정될 정도지만, 하나 가운데서 한량없음을 안다는 게송의 말을 이보다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도 드뭅니다.

부분이 전체를 닮는 구조

세 번째는 기하학의 프랙탈(fractal)입니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모양으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말하며,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을 띠는 자기 유사성을 기하학으로 풀어낸 개념입니다. 단순한 구조가 끝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오묘한 전체를 만들어 냅니다. 자연에서 예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른바 자연의 멀티프랙탈 구조입니다.

번개는 습도, 기압, 온도, 이온화 정도 같은 조건이 복잡하게 얽혀 길이 정해지므로 곧게 나아가지 않고 구불구불 가지를 칩니다. 모양은 불규칙하지만 전체와 가지가 서로 닮았습니다.

강도 그렇습니다. 큰 강줄기와 지류는 모양이 비슷해서, 한강의 지류 하나를 본류와 견주어 보면 금방 닮은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름은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통계적으로 프랙탈 구조를 지니고, 뭉게구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의 큰 주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더 작은 주름이 이어집니다. 좁은 공간에 되도록 많은 뇌세포를 배치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주가 그래프는 하루 단위로 그리든 한 달 단위로 그리든 비슷하게 복잡한 모양을 보입니다. 시간을 늘리거나 줄여 보아도 변화의 양상이 같으니 주가의 움직임은 시간에 대해 프랙탈입니다. 그래서 내일의 주가를 맞히는 일은 한 달 뒤의 주가를 맞히는 일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 있다는 말이 막연한 수사가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 자연과학의 여러 이론과 연구 성과 가운데 불교의 다른 가르침을 설명하는 데 쓸모 있는 것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순전히 불교의 언어로 이 게송과 의상 대사 「법성게」의 한 구절인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을 풀 수도 있지만, 그 일은 앞선 불교학자와 화엄 사상가들의 해설에 맡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도 상대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는 까닭

마지막으로 게송을 정리합니다. 「하나 가운데서 한량없음을 알고 한량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알아」는 앞의 예들로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서로 함께 일어남을 알면」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나타낸 것으로, 인(因)과 연(緣)과 과(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끝 구절 「마땅히 두려울 바 없음을 이루리라」는 이런 우주의 실상과 자기의 실상을 알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우주이고 우주가 나이며, 일체가 나이고 내가 일체라는 확신이 선다면 생로병사도 두려워할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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