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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이가 정각(正覺)은 해탈하여 모든 번뇌를 떠나고
온갖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면 그는 깨달음의 안목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화엄경』 「광명각품」에 나오는 문수사리 보살의 게송입니다.

깨달음을 가리키는 많은 이름

게송의 정각은 바른 깨달음을 말합니다. 『금강경』, 『반야심경』 같은 반야부 경전에서는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깨달음 말고는 마땅한 번역어가 없어 보이는데, 한 불교학자는 깨달음과 「깨침」을 구별해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꽤 일리 있는 견해입니다.

깨달음을 나타내는 말은 아주 많습니다. 구경각, 해탈, 돈오, 견성, 열반, 오도, 해오, 적멸, 수행불행까지 이어집니다. 이 말들이 모두 게송의 정각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정각이라는 경지가 어떻다고 못 박아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조사(祖師)나 선사(禪師)의 말과 행동을 흉내 내거나 옮겨 와 정각을 설명하려 든다면, 그것은 깨달음을 두고 남을 속이는 일이 됩니다.

그래도 뜨거운 온천물에 발끝부터 조심스럽게 담그듯, 무엇이 깨달음이 아닌지는 소박하게나마 말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에는 분명한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은 범부였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걸은 수행의 과정, 성불한 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깨달음의 교과서인 경전이라는 뚜렷한 증거가 있습니다.

싯다르타를 범부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총명했고 왕자였다고 해서 범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잴 때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따로 셈하지 않듯, 깨달음의 자리에서 보면 사람의 총명과 지혜는 에베레스트산 정도일 뿐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깨달음인가

이 게송도 정각이 어떤 상태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정각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일러 줄 뿐입니다. 번뇌를 떠나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번뇌가 곧 보리라는 선사들의 말, 쉽게 풀어 망상과 집착이 그대로 깨달음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아도 혼란은 남습니다. 세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도(道)가 아니라면 집착해도 된다는 말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이런 물음과 마주치게 됩니다. 집착이라는 말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고, 종교적 신념은 감성의 영역인지 이성의 영역인지, 수행이 깊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하나씩 지워 가는 일인지 묻게 됩니다. 겉으로만 보면 수행이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라 목석이 되어 가는 길처럼 보입니다. 애욕과 집착이라는, 수행에서 가장 꺼리는 말과 함께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불법의 가르침이 대개 그렇듯 이 물음도 스스로 알아내야 풀립니다. 그렇겠구나 하고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공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이 물음과 함께 게송을 다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번뇌 가운데 가장 큰 애욕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냈다 해도 깨달음의 안목을 이룬 것은 아니다. 풀이를 하려다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든 듯하지만, 마침 『삼국유사』에 이 게송과 나란히 놓고 볼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신라 백월산 아래 선천촌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둘은 절친한 벗으로 스무 살에 출가하여, 부득은 양사라고도 불리던 회진암에, 박박은 유리광사에 머물렀습니다. 둘 다 출가했지만 처자를 거느리고 살림을 꾸리며 서로 오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몸과 세상의 덧없음을 느껴 세속을 떠날 마음을 잠시도 놓지 않았습니다.

둘은 서로 말했습니다. 「기름진 밭과 풍년이 좋다지만 먹고 입을 것이 저절로 생기는 것만 못하고, 아내와 집이 좋다지만 연화장 세계에서 부처들과 노니는 즐거움만 못하다. 머리를 깎고 출가했으니 몸에 얽힌 것을 벗고 위없는 도를 이루어야지, 어찌 풍진 속에 묻혀 세속 사람들과 같이 지내겠는가.」

그 무렵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서쪽에서 부처님 미간의 빛이 비쳐 오더니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잠에서 깨어 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둘의 꿈이 꼭 같았습니다. 한참을 감탄한 두 사람은 마침내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가 각기 북쪽과 동쪽 암자에 머물렀습니다. 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은 아미타불을 그리며 염송했습니다.

3년이 채 못 된 성덕왕 8년(709) 4월 8일, 해 질 무렵 스무 살 가까운 아름다운 여인이 난초와 사향 향기를 풍기며 박박의 암자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하룻밤 묵어 가기를 청하며 시를 지어 바쳤습니다.

갈 길 더딘데 해는 떨어져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성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오니,
자비로우신 스님께서는 노하지 마오.

 

박박은 「절은 깨끗해야 하니 그대가 올 곳이 아니오. 지체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시오」 하고는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여인은 부득의 암자로 가서 같은 청을 했습니다. 부득이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여인은 「맑기가 태허(太虛)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어진 분의 뜻이 깊고 덕행이 높다는 말을 듣고 보리를 이루도록 돕고자 왔을 뿐입니다」 하고 게송 하나를 건넸습니다.

해 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네.
대나무와 소나무 그늘은 그윽하기만 하고,
시내와 골짜기에 물소리 더욱 새로워라.
길 잃어 잘 곳 찾는 게 아니요,
존사(尊師)를 인도하려 함일세,
원컨대 내 청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인지 묻지 마오.

 

부득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이곳은 여인과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골짜기에 날이 저물었으니 어찌 소홀히 하겠소.」 그는 여인을 정중히 맞아 암자에 머물게 하고, 밤이 되자 마음을 가다듬어 희미한 등불 아래 벽을 향해 조용히 염불했습니다.

날이 밝을 무렵 여인이 부득을 불러 산기가 있으니 짚자리를 깔아 달라고 했습니다. 부득은 가엾은 마음에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밝혀 주었고, 여인은 해산을 마친 뒤 다시 목욕을 청했습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얽혔지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더 컸던 부득은 통에 물을 데워 여인을 씻겨 주었습니다.

그러자 통 속의 물에서 짙은 향기가 나더니 금빛 물로 변했습니다. 놀란 부득에게 여인은 스님도 이 물에 목욕하라고 권했습니다. 마지못해 따르자 정신이 맑아지고 살결이 금빛으로 바뀌었으며, 곁에 연꽃 대좌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여인은 부득을 그 자리에 앉히고 「나는 관음보살이오. 대사를 도와 큰 깨달음을 이루게 하려고 왔소」라고 말한 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한편 박박은 부득이 간밤에 틀림없이 계(戒)를 더럽혔을 테니 비웃어 주겠다며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금빛 몸으로 광명을 내뿜는 미륵존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박박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고, 사연을 들은 뒤 탄식했습니다. 「내 마음에 가린 것이 있어 부처님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구려. 덕 높은 그대가 먼저 이루었으니 옛정을 잊지 말고 나도 함께 이끌어 주시오.」

부득이 통에 금빛 물이 남아 있으니 목욕하라고 일렀습니다. 박박도 그 물로 몸을 씻고 무량수불을 이루었고, 두 부처가 나란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몰려와 드문 일이라며 우러러보았습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일러 준 뒤 구름을 타고 떠났습니다.

계를 지키려 문을 닫은 박박과, 물들까 두려워하면서도 가엾은 마음을 따른 부득. 이 이야기를 게송과 나란히 놓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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