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과 수(受)가 수(數)가 없으며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또한 그러하니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마땅히 대모니(大牟尼)가 되니라
문수사리 보살의 게송입니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그렇게 이어져 구구 팔십일까지. 누구나 외운 구구단입니다. 이걸 왜 외워야 하느냐고 따지며 외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8단에서 팔이 십육을 외우면 되는데 2단의 이팔 십육은 왜 또 외우나 싶을 수도 있지만, 아래 단을 건너뛰고 위 단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불교 공부도 비슷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유식(唯識)이나 공(空), 구경각의 실체 같은 어려운 주제를 두고 수준 높은 문답이 오가곤 합니다. 그런데 삼귀의, 사성제, 팔정도, 육바라밀을 묻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불교 신행으로 치면 2단에 해당하지만 9단까지 가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입니다. 유식이나 공을 관념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이 게송이 말하는 오온을 몸으로 익히는 일이 먼저입니다.
다섯 가지 쌓임
오온(五蘊)은 오음(五陰)이라고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불교에서 음(陰) 자가 들어간 용어 가운데 수행에 긍정적인 말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장애나 부정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오온은 다섯 가지 쌓임, 또는 모임이라는 말입니다. 『반야심경』 첫머리의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에도 나오니, 공과 관련된 수행의 중요한 실마리임이 분명합니다.
색온(色蘊)은 우리 몸을 비롯한 물질을 말합니다. 몸으로 치면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감각 기관이 여기에 듭니다. 생각을 맡는 의근(意根)은 물질이 아니므로 색온에 들지 않습니다.
수온(受蘊)은 색온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자극을 느끼는 작용입니다. 괴로움, 즐거움, 그리고 둘 다 아닌 느낌이 있습니다.
상온(想蘊)은 받아들인 자극을 마음으로 알아차리고 개념으로 만드는 작용입니다. 자극과 상관없이 스스로 일으키는 마음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행온(行蘊)은 색, 수, 상을 거쳐 새겨진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 작용입니다. 업의 힘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식온(識蘊)은 좁게는 대상을 가려 알고 분별하는 작용이고, 넓게는 마음 작용 전체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부파 불교에서는 이와 다른 각도로 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따져 볼 것은 풀이의 차이가 아닙니다. 『반야심경』은 오온이 공하다고 했는데, 이 게송은 오온이 수(數)가 없음을 알아야 대모니가 된다고 했다는 점입니다. 대모니는 큰 성자를 말합니다. 석가모니라는 이름도 석가족의 성자라는 말입니다.
수가 없다는 것과 공하다는 것
게송의 「수가 없다」는 영(零)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가짓수가 너무 많아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은 무엇일까요. 한자로는 빌 공(空) 자를 써서 비어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서 쓴 말일 뿐입니다. 빌 허(虛)에 빌 공(空)을 쓰는 허공은 정말 비어 있을까요.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 보아도 대기 속 허공에는 분자와 원자가 떠 있고, 우주 공간에도 아주 성기기는 하지만 원자와 소립자, 빛, 암흑 물질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완전히 빈 곳은 찾기 어렵지만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허공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공도 이와 같습니다. 게송에서 오온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음을 아는 것이나 『반야심경』에서 오온이 모두 공함을 아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게송은 그 결과로 대모니가 된다고 했고, 『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이 이 이치로 모든 괴로움과 재앙을 건넌다고 했다는 정도입니다. 오늘도 반찬 투정을 하는 중생의 처지에서 대모니와 보살의 차이까지 따지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유식도 공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논쟁도 필요합니다. 그래도 발등에 떨어진 불은 오온입니다. 오온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오히려 불교 공부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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