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인간이 이룬 높은 문화의 하나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문화를 음악이나 예술 같은 범위에 가두지 않고 사람이 정신으로 일구어 낸 것 전체로 넓혀 보면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문화는 사람에게 사고하는 힘이 생긴 뒤에야 나타날 수 있는 정신의 영역이고, 그렇게 보면 종교도 인류가 시작된 뒤에 나중에 생겨난 것입니다.
문자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종교의 역사는 5,000년 남짓입니다. 사람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점을 짚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지금의 불교만 보고 그것이 붓다의 참 가르침이라고 확신하거나, 지금 쓰는 불교 용어를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의 말로 단정하면 오히려 붓다의 참 법과 말을 비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종교가 교조(敎祖)의 사상 가운데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문화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낱말은 '보살'과 '자비'입니다. 그런데 『숫타니파타』에서 보살이라는 말은 붓다의 탄생을 전하는 대목에 한 번 나올 뿐이고, 자비를 주제로 삼은 경도 아래의 짧은 한 편뿐입니다. 왜 이토록 짧게 다루었을까요.
그럴 만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인도 동북부에서 불교와 함께 일어난 자이나교를 비롯해, 여러 수행 전통이 이미 불살생(不殺生)과 자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붓다가 자비를 불법(佛法)의 대표 표지로 내세웠다면 다른 종교와 구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붓다가 다른 종교와 사상을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데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숫타니파타』의 자비에 관한 대목을 읽어 보면 이 짐작에 수긍이 갈 것입니다.
사물에 능통한 사람이 평안의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며 정직하고, 바르고 상냥하여 부드러우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경은 이어서 만족할 줄 알아 남이 공양하기 쉬운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분주하지 않고 간소하게 살며,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슬기로워서 집안 일에 무모하게 매달리거나 집착하지 말라고 합니다. 양식 있는 사람에게 비난받을 만한 행동은 결코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안락하고 평화로워 행복하기를 빕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미세하거나 거칠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두 행복하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끝없는 자비심을 내라.
온 세계를 향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막힘도 원한도 없는 자비를 펼치라고 합니다. 서 있을 때도 걸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잠들지 않은 동안에는 누워 있을 때도 이 마음을 굳게 지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은 참으로 숭고한 삶이라 부릅니다.
마지막 구절은 그릇된 생각에 현혹되지 않고, 계를 지키며 통찰을 갖추어 감각의 욕망에 대한 탐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 윤회에 들지 않는다고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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